/ 4장 / 어어, 내일 날씨 보고. 애들? 나 빼고 넷. 어, 맞다. 개천길? 당연히 막혔지. 어, 언덕배기 돌아서. 한참 멀어도 어쩔 수 없지. 밥? 먹었다. 주먹밥. 회색 시멘트 벽 너머로 빨간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낙수가 보였다. 동그랗고 까칠한 머리 위로 언제나 보이던 털모자가 없었다. 실내라 하더라도 서늘하다 못해 입김이 절로 나오는 공기였다. ...
/ 3장 /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가 바다 위의 그물처럼 너울거렸다. 아 그렇구나. 여긴 바다구나. 자신은 그물 아래 옹송그린 물고기다. 검은 침낭을 두르고 결코 나가지 못할 그물 밖의 세상을 갈망하는 물고기다. 우성은 그물 안에서 정신없이 사방으로 흩어놓은 물건들을 응시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정리 정돈을 강조했던 명헌이 본다면 가...
/ 2장 / ‘이게 전부 우성 때문이에용. 한 달에 샴푸를 두통씩이나 동내잖아요. 빡빡이 주제에.’ 빡빡이인거랑은 상관없지 않냐 대꾸하면서도 괜히 찔렸다. 암만 박박 깎은 머리라 하더라도 누구네들처럼 비누로 감노라면 두피가 건조해지곤 했던 터다. 여름철이면 땀도 오지게 흘려 몇 번이고 씻을 수 밖엔 없었고 명헌의 말대로 샴푸를 두통씩 동낼때도 있었다. 에이...
자 친구여! 너도 죽을 지어다. 왜 이리 비탄하는가? 너보다 훨씬 나은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너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생기고 당당한가? 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여신이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그 누군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내 목숨을 앗아갈 아침이나 저...
권형, 형이 제 안부를 궁금해하셨단 소식을 듣고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배고픔을 깨달은 갓난애처럼 울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전화 너머 상훈이는 꺼이꺼이 울어대는 제 추태에 속없는 새끼라며 욕을 퍼붓다가 다시 어르고 달래기 바빴습니다. 그저 끊어버리면 될 것을 비싼 해외전화를 곧이곧대로 붙들고서 위로했습니다. 제가 쾰른에서 지내고 있음을 아실 줄 몰랐습니다. ...
섬 / 우성명헌 새벽빛이 혼란하게 투과했다. 맑은 하늘에는 그보다 맑은 보름달이 뜨여 있었다. 유난히 밝기 때문일까 주변의 별무리들이 입을 틀어막고 청청한 하늘 깊숙이 박혀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성은 얼얼한 뺨을 비비며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풍경도 그저 일상일 뿐인지라 일말 특별할 거 없었다....
갸륵하게 끔찍한 별. 위도 38° 12’ 25” N, 경도 128° 35’ 31” E. 뿅, 왕자님의 충실한 수종, 이곳에 있습니다. 옥체 평안하옵신지요. 창백하고 푸른 행성에 도착한 지 어느덧 그레고리력 18년째. 벼락이 땅을 스치듯 시간이 잘게 찢어졌습니다. 우주의 태동에 비교하여도 먼지와 같은 순간들입니다만, 어떠신가요. 18년 동안 왕자님은 어떤 삶...
문안(問安) 03. 수취인불명 태섭아 여기는, 눈이 온다. 눈을 볼 때면 수많은 기억들이 떠밀려 올라와. 그래서 굳이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몸을 바쁘게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 이런 도피 성향 때문에 뜻하지 않게 성실한 사람이라 평가 받는 걸까. 슬프고 우스운 이야기야. 요즈음 막내는 더욱 위태로워. 마르고 날카로워졌어. 조용하고 차분해. 폭풍전야를 마...
손님 上 ‘이태원 한복판에 있는 대형 호텔 알아요? 3년 전에 생긴 호텔이고 계열사 없는 단독 브랜드에요. 어느날 갑자기 도시 한복판에 들어서더니 주변 오렌지족들을 싹 끌어모았데요. ‘문라이트’라고 호텔 내부에 있는 최신식 나이트클럽이 박터진거죠. 젊은 놈들이 하루 술값 20만원 이상을 꼬라박더라, 그놈들 지갑엔 엔화랑 달러가 가득 있다더라, 또 흰색...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무진 *무진군. 면적 532,83km², 인구수는 3년 전 기준 70,320명. 서울에선 3시간 남짓 되는 거리. 애매한 인구수와 애매한 위치, 특산물이랄 것도 없고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뛰어난 것도 없다. 그나마 해안과 인접해있어 서너개의 해수욕장들이 있으나 규모도 작...
YANGHOYEOL BLUE / 양호열 블루 01. 아니, 이런걸 화가 났다고 할 수 있나? 앞의 차량신호는 붉게 빛나고 있었고, 횡단보도 위의 사람들은 가야할 길을 건너면서도 분홍 스쿠터 뒤의 검은 세단이 불규칙하고 거칠게 내지르는 경적에 시선을 놓치 못하고 있었다. 검은 세단에 시선 한번, 그 앞의 분홍색 스쿠터에 시선 한번. 공중으로 흩어지는 짙은 배...
1. 같은 세계관을 가진 글이 있습니다. (1) 고조의 순간(스타트렉/콥술) - STELLA(스타트렉/커크) - 오래된 고독에게로 인사(스타트렉/본즈) (2) 그리고 밤이 끝나는 순간(엑스맨/행알) - 절대온도(스타트렉/콥술) - YOUR BONES(스타트렉/본컼본) *'그밤순'은 blue-room.tistory.com/m/285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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